1894년 11월, 공주 우금치 고개는 조선의 운명이 영원히 바뀐 피의 전장이었습니다. 반외세와 반봉건을 외치며 일어선 2만 명의 동학농민군이 불과 3,400명(조선 관군 3,200명, 일본군 200명)의 연합군에게 흔적도 없이 궤멸당한 사건입니다.우리는 흔히 이를 정신력과 근대식 무기의 차이로만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를 '은(Silver)의 가치'로 환산해 보면, 이 전투는 철저하게 '자본의 결핍'이 불러온 국가적 대참사였습니다.1. 100미터와 1,000미터의 절망적인 간극당시 전력 비교는 무기의 성능을 넘어 '사거리'에서 이미 학살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동학농민군: 유효사거리가 고작 100m에 불과하고, 한 발을 쏘고 재장전하는 데 1분이 걸리는 구식 '화승총'과 '죽창'이 전부였습니다.일본·관군 ..